농촌에 가면 이때쯤 한참 가을걷이가 이뤄진다. 그래서 서리가 내릴 때까지 일손이 부쩍
필요하다. 가족만 가지고 다 할 수 없어서 서로 품앗이도 하고 품꾼도 산다. 품앗이는
돌아가며 바쁠 때 서로서로 일해주는 것으로 품삯을 대신하는 것이고, 품꾼은 그날 일한 것을 그날 삯으로 받아가는 사람이다. 그렇게 일손이 바쁜 중에 어디서 흘러들어와 광산에서
일하다가 광산 일거리가 떨어져서 아무일도 않고 있던 나그네가 일 바쁜 집에 와서 놀기도
하면서 이 일 저일 손을 거든다. 부인네들이 식사를 이고 오면 내려주기도 하고
막걸리를 날라다 주기도 하고, 연장을 가져다 주기도 하고, 무거운 짐을 같이 들어도 주고
이야기 속에 같이 끼여들어서 웃기도 하고 그러다가 밥 먹을 땐 같이 앉아서 밥도 먹고
막걸리도 같이 마시고 그러다 일이 파할 때쯤 그의 존재를 잘 눈치채지 못한 사람들에게
인사나 받고 집으로 간다.
그 사람은 신기하게 다음날 누가 부르기나 한 듯이 또 일찌감치 나타나 어느틈에 옆에서
뭘 바라지도 않으면서 이것이면 이것, 저것이면 저것을 도와준다. 그냥 그자리에 당연히 있는
감초처럼 끼여있다. 그저 놀러온 사람같은데 아무일이나 막 거든다. 그집 일 끝날때까지
함께 하다보니 어느새 사람들이 그가 당연히 함께 하는 줄 생각하고 이 일 저 일 시키기도 한다.
그는 마다하지 않고 불쾌해 하지도 않고 다 들어준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그에게
고마워한다. 집에 갈때 거둔 것을 들려보내고 음식 남은 것을 들려보내곤 한다. 그는 계산도
없이 웃으며 또 받아가고 고마워한다. 사람들이 말한다. "내일부터 우리 집 일하는데 또
와주쇼"하고. 그는 고맙게 그 말을 받고 다음날부터 시작되는 다른 집 일에 그와 같이 또
간다. 그렇게 그렇게 하다보니 어느덧 그 사람은 농사 일을 배웠고 사람들 틈에서 너끈히
그 일을 해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처음엔 고마워하고 감사의 표현을 조금씩 하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에게 어떤 일들을 제대로 부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에게 같은 품삯을
주기 시작했다. 그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아낙네들이 그 사람이 나타나면 입질을 했다. 속없어서 시키지도 않은 일 고된 줄도 모르고
다 해주고 다닌다고. 돈도 안받고 천치같이 남의 일 해준다고. 그는 진짜 남들과 같이 늦도록
함께 있으며 잔일을 다 거들었다. 그 집안의 누구이기라도 한양. 그 집 애들도 다 말 안듣고
놀러가 버렸는데... 그는 정말 속없는 인간이었다. 열심히 잘해주니까 사람들이 품삯은
안주지만 그를 매우 기뻐했다. 그리고 고마워했다. 시간이 지나가자 사람들이 그를 그냥
삯도 안주고 부리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삯을 주고 고마워도 했다.
그는 일을 그렇게 했으니까. 그의 태도는 여전했다. 여전히 도우려고 나왔을 때처럼
일했다.
그는 동네 이집 저집 가을걷이를 거반 다 돌았다. 그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저마다 그를 칭찬했다. 무슨 날이 되어도 그를 같이 초청했다. 그는 그 동네에서 빠져선
안될 사람이 된 것이다. 아이들도 그를 좋아했다.
봄이 되었다. 그는 또 그렇게 품일을 열심히 했다. 워낙 그에 대해 아는터라 서로 불러가려
했다. 그를 부르려면 선약을 해야했다. 서로 그를 데려가려고 싸움도 붙었다. 그는 말했다.
"왜들 그래요. 돌아가며 다 해드릴께요. 걱정마세요." 정말 그는 도와주려는 사람처럼 다
찾아가며 일해주었다.
이듬해가 되었다. 동네 김주사댁에서 보자는 전갈이 왔다. 동네에서 논을 제일 많이 가지고
있는 집이었다. 갔더니 그 집 땅을 부치라는 것이었다. 그는 이제 자기 땅은 아니지만 거의
그렇게 자기 농사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렇게 농사지으면서 그는 틈틈이 이웃집들을
도와주었다. 그렇게 바쁘면서도 그의 얼굴은 싱글벙글이었다. 이웃들도 그가 나타나면
힘이나고 즐거웠다. 싸우다가도 별거 아닌게 되어 버렸다. 그는 나그네였지만 동네의
주인이었다.
너무 계산하고 헤아리지 말자. 손해볼까봐 너무 겁내지 말자. 그리고 도와주자.
이 사람은 복이 얼마나 많이 쌓인건가? 우리는 우리 주님과 그 약속의 말씀이 있는데도
그렇게 겁을 내는가? 내가 누구에게 손해볼까, 누가 날 이용할까 두려워서 손을 널리
펴지 못하고 오그리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금파먹는 사람들은 여간해서 농사일은 못한다. 농사일은 일확천금하는 일은 없으니까.
금 파먹는 사람들은 금이 안나오면 굶어죽을 정도가 되어서 외상양식을 먹을 망정 농삿일은
잘 안하려고 한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손놓고 굶어죽기 십상이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느니라"
작성일 : 2009/10/10(토)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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